「때로는 나도 미치고 싶다」 스티븐 그로스(2011) "우리는 심리적인 문제로부터 달아날 수 없다. 결국 어떤 식으로든 문제가 표출될 것이다."
"지루함의 표출은 정신분석가에게 유용한 도두가 될 수 있다. 환자가 특정 주제를 회피하고 있다는 신호, 또는 사적이거나 부끄러운 어떤 주제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없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자기 이야기 하는 법을 차아내지 못하면 이야기가 우리에게 말을 걸기 시작한다. 꿈을 꾸거나 증상이 생기거나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행동하기 시작한다."
"특히 편집증적인 망상은 자신이 무관심하게 다뤄지고 있다고 느낄 때 일어나는 반응이다. 그것은 환자를 불안에 떨게 만들기는 하지만 동시에 방어기제이기도 하다. 편집증적인 망상은 그보다 훨씬 끔찍한 감정 상태, 즉 아무도 자신에게 관심이 없으며 자신을 신경 쓰지 않는다는 감정으로부터 환자를 보호해준다. '아무개가 나를 배신했어'라는 생각은 '아무도 날 신경 쓰지 않아'라는 훨씬 고통스러운 생각을 막아준다"
스티븐 그로스(Stephen Grosz, 1952~ )
1952년 미국 시카고 외곽에서 태어난 스티븐 그로스는 가게를 운영하는 이민자 아버지와 화가인 어머니 아래서 성장했다. 청소년기 시절부터 심리학 관련 책들을 섭렵했고,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에서 심리학과 정치학을 전공 한 후 옥스퍼드 대학에서 공부했다.
초창기에는 법무 관련 외래 환자를 다루는 포트먼병원에서 일했으며, 이후 정신분석가로서 개인 진료를 시작하여 30년간 지속했다. 현재 런던정신분석교육원에서 정신분석 기법과 런던 대학에서 정신분석 이론을 가르치고 있다. 첫 번째 저서 「때로는 나도 미치고 싶다」는 15개 언어로 출판되었으며, 2013년 '가디언 퍼스트 북 어워드'에 이름이 올랐다.
이 책은 상담실에서 벌어진 이야기를 가지고 각자의 삶을 구석구석 비춰준 관음증적 차원의 즐거움을 주고 있다. 비슷하게 올리버 색스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모건 스콧 펙의 「아직도 가야 할 길」이 있다. 내가 하는 행동의 진짜 동기는 무엇일까? 나는 무엇을 숨기고 있는 것일까? 나는 친밀감을 혹은 죽음을 얼마나 많이 두려워할까? 나는 '지나간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지금도 매일 내 생각과 행동의 틀을 잡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로스는 아무리 특이해 보이는 행동이라도 충분히 깊숙이 파고든다면 언제나 논리가 존재한다고 확신한다. 비록 알아내기까지 몇 달, 몇 년이 걸릴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트라우마는 겉으로 드러나는 법, 첫번째 에피소드
책의 첫 번째 논의하는 사례는 젊은 엔지니어 피터이다. 어느날 온몸에 자상을 입은 채 피를 흘리며 발견 된 피터. 그로스와 상담 중 피터는 기억이 허락하는 한 아주 오래전부터 자신이 무언가를 두려워했다고 말했다. 상담이 진행되면서, 어린시절 부모로부터 학대를 당했고 이 문제로 씨름해왔다는 것을 알게 됬다. 이러한 종류의 트라우마는 내면화가 이루어지며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의 관계 영역에서 문제로 표출된다.
다시 무력감을 느끼고 싶지 않았던 피터는 공격을 당하느니 공격을 가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더 낫겠다고 판단했고, 스스로에게 약해질 수 있는 권리를 허락하지 않았으며, 이러한 자기 연민의 부재로 자해를 벌이게 된 것이었다.
너무 어린 나이에 사건을 겪어서 그에 대해 명확히 표현하지도, 이야기를 통해 마음을 가라앉히지도 못한다면 난해하고도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가 초래된다. 피터의 행동은 말을 걸기 위해 사용하는 그만의 언어였고, 살아간다는 것의 느낌, 즉 어릴때 느꼈을 분노와 혼란, 충격을 느끼게 만듦으로써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또한 피터에게 그러한 충격은 다른 사람을 충격에 빠뜨려야 한다는 욕구로 표출되기도 했다. 갑자기 상담을 중단했고, 약혼자에게 자살로 꾸미고, 갑자기 퇴사를 하든 의절을 하든, 피터는 자신이 다른 사람을 충격에 빠뜨릴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즐겼고, 다른 사람이 충격받을 때 초래되는 고통에 대해 상상하기를 좋아했다. 두려워하며 살거나 또다시 충격을 받느니 차라리 충격을 주는 쪽이 더 낫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가혹한 판단을 내리는 근원적인 이유
16년 만에 처음으로 부모를 만나러 가는 애비와 자녀 둘. 애비는 가톨릭 신앙을 가진 금발의 아일랜드 남자와 결혼한 뒤 부모에게 의절당했기 때문이었다. 엄격한 유대교 집안이 아니었음에 아버지의 반응을 이해하기 어려워했었다. 그런데 왜 재회를 하게 됬을까? 아버지가 비서와 25년 동안 불륜을 저질렀고, 그 비서는 금발의 가톨릭 신자였다.
애비의 경우를 분석하자면, 그 아버지는 애비의 결혼 결정이 '분열(splitting)'이라는 기제를 발동시킬 완벽한 명분이 생긴 것이고, 이는 "스스로를 용납할 수 없다는 내면의 감정을 무시하기 위해 사용 하는 무의식적인 전략'이다. 스스로가 계속 좋은 사람이고자 자신의 나쁜 측면을 다른 사람에게 투사하는 것으로, "내가 나쁜 게 아니라 네가 나쁜 거야"라고 말하며 심리적 안정감을 확보하는 경우다.
"앞이 요란하면 그만큼 뒤가 구린 법"이라고 말한 애비. '가정이 우선이라고 외치던 정치인이 불륜을 저질렀다거나 동성애가 범죄라고 외치던 목사가 남창이랑 관계를 맺었다'는 뉴스가 그러한 경우라 말할 수 있다.
차라리 잊히는 것보다는
그로스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나이가 들수록 정신질환을 겪을 확률은 낮아지지만 편집증을 겪을 확률은 높아진다고 주장했다. 모두가 나를 잊어버린 현실 속에서 사느니 있지도 않은 위협을 피해 다녀야 하는 소설 속에서 사는 쪽이 더 낫다고 여기는 것이다. 요양원에 남겨진 노인은 아무도 찾지도 관심도 가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기보다 어떤 간호사가 자신을 독살하려 한다는 생각을 발전시키는 쪽을 선호한다. 어떤 사람은 여행 후 집에 들어가는 순간 폭발이 일어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이런 망상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어린시절 매일 가족이 있는 따뜻한 집에 들어갔지만, 요즘은 매일 싸늘하고 비어있는 냉장고가 있는 방으로 돌아오고 있었고, 이런 끔찍한 무관심보다는 폭발 테러에 대한 망상으로 채웠고, 잊힌 존재가 되느니 차라리 미움을 받고 사냥을 당하는 표적이 되겠다고 느꼈던 셈이다.
상실을 받아들여야 할 필요성
"우리는 변화에 직면하면 망설인다. 변화는 곧 상실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정도 상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결국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
911테러, 마리사가 세계무역센터 98층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을 때 첫 비행기가 북쪽 타워를 들이받았다. 마리사는 핸드백도 챙기지 않은 채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비상구로 향했다. 하지만 마리사와 대화를 하던 여자는 떠나지 않았고, 계속 일하는 사람도 있었고, 나가다가 물건 챙기러 돌아간 사람도 있었다. 이들 중 누구도 살아남지 못했다.
그로스는 25년간 정신분석가로 일하면서 놀란 점은, 바로 인간은 변화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비교적 사소한 행동만으로 최상의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것이 분명한 상황임에도,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상황에서도 변화를 선택하려 하지 않기도 한다. 자신의 행동이 정확히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파악하는 데 더 관심이 있을 뿐이다. 마리사는 테러 당시 누가 봐도 긴급한 상황임에도 모두가 그저 서 있기만 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지만, 그로스는 그러한 반응이 오히려 일반적이라고 지적한다.
인간은 왜 어떻게든 변화를 피하려고 안달인 걸까? 그것은 곧 상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약간의 상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모든 것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당장 잃는 것만 본다는 것은 무언가 얻는 것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마무리
다른 사람에게 이상하게 비치거나 본인에게 이해가 되지 않는 반응에는 언제나 근권적이 이유가 존재한다. 이 책에서 소개되는 사람, 상황, 문제들은 다양하지만 느낄 수 있는 요점은 동일하다. 상담실의 두 사람은 보편적인 인간상을 대표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가 해소되는 과정에서 독자는 "이 사람에게서 내 모습도 조금 보이는 것 같아"라고 말하게 된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지배계층의 생각에 반기를 든 죄로 죽음을 맞이하면서 "성찰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라는 말을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소크라테스가 생각하기에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영예란 '자기 반성적인 의식'이었다. 이러한 역량을 부여받은 인간이기에 인간의 행동을 좀 더 인본주의적인 관점에서 접근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함께 읽으면 좋은 책 「자아와 방어기제」 「밀턴 에릭슨의 심리치유 수업」 「카렌 호나이의 정신분석」 「진정한 사람 되기」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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